기록이 귀찮아질 때 내가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
기록을 오래 해온 사람처럼 보이지만,
사실 나 역시 기록이 귀찮아지는 시기가 반복해서 온다.
노트는 그대로 있고, 펜도 늘 쓰던 것인데
어느 날부터 갑자기 손이 가지 않는다.
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, 특별히 바쁜 것도 아닌데
노트를 펼치는 일이 유난히 귀찮아진다.
이럴 때 예전의 나는
새 노트를 사거나, 다른 펜을 꺼내거나,
기록 방식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.
기록이 안 되는 이유를 늘 도구에서 찾았다.
하지만 여러 번 멈췄다 다시 시작하면서
이제는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이 따로 생겼다.
기록을 ‘왜 안 하게 됐는지’를 묻기 전에,
기록을 어떤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.
기록이 귀찮아질 때, 대부분은 기록이 무거워져 있다
기록이 귀찮아질 때를 돌아보면
대부분 기록이 나도 모르게 무거워져 있었다.
- 오늘은 정리해서 써야 할 것 같고
- 어제보다 더 잘 써야 할 것 같고
- 의미 있는 내용이 아니면 적기 애매하고
기록이 해야 할 일이 되어 있는 상태다.
이 상태에서는
노트를 펼치기 전부터 머릿속에서 검열이 시작된다.
‘이건 쓸 만한가?’
‘이 정도로 써도 되나?’
‘지금 쓰면 지저분해질 것 같은데…’
손이 귀찮아진 게 아니라
생각이 먼저 피곤해진 것이다.
그래서 기록이 귀찮아질 때
나는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.
“지금 나는 기록을 결과물처럼 대하고 있지 않은가?”
기록이 멈출 때, 기준은 항상 앞서 있다
기록이 잘 이어질 때의 노트를 보면
의외로 특별한 내용은 많지 않다.
투두리스트 몇 줄,
그날 들은 말 한 문장,
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메모들.
반대로 기록이 멈출 때의 노트는
머릿속에서 이미 완성형을 요구받고 있다.
기록을 시작하기도 전에
‘이 노트는 이런 식이어야 해’라는 기준이 생기고,
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으면
아예 시작하지 않는다.
그래서 기록이 귀찮아질 때
나는 기록의 양이나 도구를 점검하지 않는다.
기준이 높아졌는지를 먼저 본다.
기록이 안 되는 날은
대부분 기준이 하루치 분량을 넘어가 있다.
내가 가장 먼저 낮추는 기준은 이것이다
기록이 귀찮아질 때
내가 가장 먼저 낮추는 기준은 단순하다.
‘오늘을 정리해야 한다’는 생각을 버리는 것.
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.
결론이 없어도 괜찮다.
맥락이 없어도 괜찮다.
그날의 기록은
그날의 상태만 남겨도 충분하다.
- 오늘은 생각이 잘 안 모인다
- 하루 종일 회의만 했다
- 노트를 펼치기까지 오래 걸렸다
이 정도면 기록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.
이 기준을 낮추면
기록은 다시 할 일이 아니라
남길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.
기록이 이어질 때의 공통점
기록이 다시 이어질 때를 보면
항상 공통점이 있다.
- 기록을 잘하려고 하지 않았고
- 채우려고 하지 않았고
-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
노트는 늘 조금 모자란 상태였고,
그 모자람 덕분에 다시 펼칠 수 있었다.
기록을 오래 하는 사람은
매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,
기록이 안 된 날을 문제 삼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.
귀찮아진 기록을 다시 시작하는 데
필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
기준을 내려놓는 태도였다.
그래서 나는 이렇게 점검한다
기록이 귀찮아질 때
나는 노트를 바꾸기 전에
이 세 가지만 먼저 본다.
- 지금 기록을 ‘잘 쓰려고’ 하고 있지는 않은지
- 오늘의 기록에 의미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
- 비어 있는 페이지를 실패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
이 질문에 하나라도 걸리면
기록은 이미 무거워진 상태다.
그럴 땐
오늘 한 줄만 쓰고 노트를 덮는다.
그 한 줄이 다음 페이지를 열게 만든다.
마무리하며
기록이 귀찮아질 때
문제는 기록이 아니다.
대부분은 기록을 대하는 태도다.
기록은 늘 가볍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,
조금 엉성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.
오늘 기록이 귀찮다면
노트를 덮어도 괜찮다.
다만 내일 다시 펼칠 수 있을 만큼만
기준을 낮춰두면 된다.
기록은
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,
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오래 남긴다.
그리고 기록이 귀찮아질 때
내가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도
바로 그 지점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