다이어리 실패 유형
‘나는 왜 다이어리를 끝까지 못 쓸까’ 하고
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.
하지만 돌이켜보면, 문제는 의지가 아니었다.
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다이어리를 고른다.
새 다이어리를 펼칠 때의 설렘은 언제나 같다.
이번엔 다를 거야.
하지만 몇 달 뒤, 책장 한 켠에서 반쯤 비어 있는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된다.
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.
'나는 왜 다이어리를 끝까지 못 쓸까'하며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.
돌이켜보면 문제는 의지가 아니었다.
실패할 수밖에 없는 다이어리를
비슷한 이유로 반복해서 선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.
그 실패는 대부분 아래 세 가지 유형 안에 있었다.
실패 유형 ① 너무 예쁜 다이어리
처음에 가장 많이 빠지는 유형이다.
표지가 예쁘고, 종이가 좋고, 펼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다이어리.
첫 장은 유난히 정성스럽다.
글씨는 또박또박, 여백은 균형 잡혀 있고,
누구에게 언제든 보여줄 수 있을 만큼 깔끔하다.
문제는 그다음이다.
글씨가 한 번 삐뚤어지거나,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날이 오면
갑자기 손이 멈춘다.
이 다이어리는 ‘잘 써야 할 것 같아서’ 오히려 쓰기 어려워진다.
이 다이어리는 너무 마음에 드는데,
나는 늘 이렇게 깨끗하게 쓰지 못한다.
결국 다이어리는 기록 도구가 아니라
보존해야 할 물건이 되고,
아까워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.
실패 유형 ② 계획이 과한 다이어리
이 유형은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더 잘 빠진다.
1년의 계획, 만다라트 계획표, 하루 단위 계획,
목표, 회고, 체크리스트, 습관 트래커, 심지어 10년 단위목표까지
다이어리가 나를 인생을 완벽하게 관리해 줄 것처럼 보인다.
처음에는 뿌듯하다.
하지만 하루라도 빈칸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.
못 쓴 하루가 쌓일수록
다이어리를 펼치는 게 부담이 된다.
오늘은 기록을 못 한 게 아니라,
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.
다이어리는 도와주는 도구여야 하는데
어느 순간부터 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된다.
그리고 기록은 점점 줄어든다.
실패 유형 ③ 처음부터 완벽하려는 다이어리
이건 다이어리의 문제가 아니라
다이어리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,
사실은 구조의 문제다.
첫 장에 연간 목표를 쓰고, 레이아웃을 미리 정하고,
중간에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란다.
하지만 기록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난다.
한 페이지가 망가졌다는 이유로 새 다이어리를 사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.
한 장을 망쳤다고, 한 해를 버릴 필요는 없었다.
완벽한 시작은 가장 빠른 포기의 이유가 된다.
기록을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처럼 다루는 순간,
다이어리는 오래가지 못한다.
이 세 가지 실패 유형의 공통점
세 가지 유형은 모두 다르지만
공통점은 분명하다.
- 다이어리가 나보다 앞서 있다
- 기록보다 기준이 먼저다
- 다이어리를 바꾸는 이유가 결국 기대치다
그래서 나는 다이어리를 못 쓰는 사람이 아니라,
실패하기 쉬운 구조를 반복해서 선택하고 있었던 셈이다.
실패를 줄이기 위해 바꾼 기준
지금은 다이어리를 고를 때 아주 단순한 기준만 남겼다.
- 끝까지 써도 부담 없는 분량
- 아까워하지 않아도 되는 가격
-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 하루
잘 쓰는 다이어리보다
계속 쓰게 되는 다이어리가 중요하다는 걸
여러 번의 실패 끝에야 알게 됐다.
나처럼 하나의 다이어리에 금방 질려한다면
30~40페이지 정도로 나누어져 있는 소프트노트를 권한다.
한 두 달 단위로 노트가 바뀌니
매번 새로운 노트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쓸 수 있게 된다.
작심삼일이 연속이면 습관이 된다고 했던가.
마무리하며
다이어리를 바꾸는 건 실패가 아니다.
실험에 가깝다.
다만 같은 이유로 계속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
내가 어떤 다이어리에서 멈춰왔는지
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.
요즘 나는 한 권으로 1년을 채우는 다이어리보다는
부담 없이 끝낼 수 있는 분량의 노트를 선호한다.
왜 이런 방식이 나에게 더 잘 맞았는지,
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
다음 글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.